잡설/회고록

2021년 회고 (3)

유우비트 2022. 2. 22.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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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와 사람과 스터디 + PS 이야기 (2)

 

그 두 명이 왜 나갔는지는 지금 와서도 잘 모르겠다.

아마 본인들이 생각했던 방향성과 다르게 운영되어서가 아니었나,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충격적인 일은 아니었다. 조짐은 있었다. 학기 중 학교에서 진행하는 스터디그룹을 참여하려고 했다.

투표에 부쳤다. 대다수는 찬성했지만, 두 명이 반대했다. 그중 한 명은 다른 학과였다. 그러니 학교 스터디를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스터디에 참여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4연탈주의 트라우마가 안 떠올랐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좋은 상황인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래도 4명은 너무 적었다. 인원을 추가로 뽑아야 했다. 1학기 파이썬 수업 때 조별로 모여서 코드리뷰를 하는 활동이 있었는데, 그때 조원들 중 열심히 참여했던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영입 제안을 했었다. 어찌어찌해서 합류하게 되었다.

 

1학기 때의 운영으로 배운 것들이 있었다.

학기 중에는 누구나 바쁘다. 학회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학교 공부만으로도 벅찬 사람도 있고, 다양하다.

때문에 학기 중에 여기서 추가로 알고리즘 공부를 하라고 해봤자 아무도 안 할 것임이 분명했다.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한다면, 그리고 그 활동이 오랜 기간 동안의 참여를 요한다면, 그 참여를 위한 동기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니 그러한 동기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지원금을 주는 전공 스터디는 그런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2학기 때는 학교에서 C를 가르쳤다. 그래서 C언어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

사실 스터디라는 것이 모호한 면이 많다.

공부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책을 다시 읽어볼 것이다. 누군가는 강의를 다시 들어볼 것이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마지막이 돼서야 그 모든 것들을 해낼 것이다.

그러한 방법 상의 차이 속에서 공통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 학습의 성취를 서로 평가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 활동이 학교의 지원금을 받기 위한 요식행위로 전락하기를 바라진 않았다.

한 학기 동안의 활동이 그저 5만원을 받기 위한 형식상의 절차였다면, 가성비 측면에서 여러모로 손해가 아닐까 싶다.

결국 스터디는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활동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이 수업이 '프로그래밍 언어 학습'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활동이 각자 너무나 달랐다.

고민을 하다가 결정한 것이, C언어를 이용한 PS로 언어 학습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1학기 때 파이썬 공부에서 득을 많이 본 방법이기도 하고,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에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으니까.

 

문제는 어떤 문제를 풀 것이냐였다. PS를 푸는 순서와 학교에서 C언어를 배우는 순서는 다르다.

포인터나 동적 배열 같은 것들을 배울 즈음에 왔을 때 그런 문제들이 더욱 도드라졌다.

가령, 이중 포인터를 익히기 위해 선택한 문제들은 이중 포인터에 통달해야만 풀 수 있었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알고리즘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고, 결국 PS에 집중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언어란 결국 익숙함의 문제다.  언어 자체를 목적으로 하든 알고리즘 학습을 목적으로 하든,

결국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언어의 숙달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을 공부해도 결국은 우리의 학습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꽤 열심히 했다.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그때는 우리 스터디원들을 (전부) 믿지 못했다.

나름 믿을만한 사람 한 명을 뽑아서 주마다 번갈아가면서 쓰기로 했다.

대신 우수 스터디원으로 선정될 경우 주어지는 상금을 좀 더 가져가기로 했다.

결론적으로는 무급봉사가 되었고 우수 스터디 타령은 그저 김칫국 드링킹이 돼버렸다.

그렇게 학교 스터디 활동은 학교 지원금 5만원만을 남기고 끝났다. 슬펐다.

앞으로는 보고서 따위는 절대 혼자 쓰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터디 활동 때문에 매주 한 번씩은 디코에 모여서 코드리뷰를 해야 했다.

그 외에도 몇 명씩 디코에 모여서 풀기도 했었다. 1학기 때와는 다르게 나름 친밀한 분위기였다.

사람은 역시 얼굴을 봐야 친해지는구나. 새삼스럽게 인간관계의 역학 같은 것들을 몸소 체감하게 된 기분이었다.

 

 

대학교에서는 뭘 배우나요? & 글 이야기  - 문학과 사고(2)

 

2학기 때는, 필수교양을 채우기보다는 내가 평소에 듣고 싶었던 교양을 들으려고 했다.

그때야 계속 군지원 탈락을 겪을 줄은 몰랐지만, 원래 계획은 1-2를 마치고 휴학 후 2,3월 즈음 군대를 가는 것이었다.

어차피 가는 거 하고 싶은 거나 하고 가자!라는 마음에, 글쓰기 교양을 3개나 신청했다.

 

하나는 문학적 사고, 하나는 수사학 글쓰기, 하나는 문예창작에 대한 강의였다.

 

글쓰기를 즐기는 편이다. 애초에,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었다. 정말 어렸을 때 시나리오 쪽에서 재밌는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고, 한때는 웹소설 연재 쪽에 잠깐 있었던 적도 있다. 글로 밥 벌어먹고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턴 취미로만 즐기는 편이다.

그것들이 취미 안에만 남게 되면서, '전문적'인 작문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기회가 되면 언제든 듣고 싶었던 강의 리스트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모조리 해치우기로 했다. 그게 위에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취미와 일은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아무리 글쓰기가 취미라지만 일주일에 세 편씩 과제로 글을 써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루는 뭘 써야 하지?로 시작해서 어떻게 써야 하지?로 이어졌다. 작가는 글감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굵직한 글감을 계란 낳듯 싸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매 순간 생각하고 고민해야 했다.

시험기간과 겹치게라도 되는 날에는 이따위로 수강신청을 한 나를 저주하기도 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대학교 생활 중 최고의 학기로 남을 만한 수업이었다.

 

오늘은 그 셋 중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정확하게는 '문학적 사고'를 함양하는 강의였다. 많은 학생들이 소설을 쓰는 강의로 착각하곤 했다.

강의평을 보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유리하다고 한다. 완전히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수업의 목적이 글을 잘 쓰고 못쓰는 사람을 가리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매주 테마가 정해진다. 그리고 테마에 대한 교수님의 '새로운 관점'이 주어진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짧은 글(미대라면 그림도 가능했다)을 토론자료로 준비해 간 뒤, 각자의 해석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다.

평가 기준은 그 새로운 관점을 기준으로 했는지의 여부에 있다. 글을 잘쓰고 못쓰고는 그다음의 일이다.

 

교수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다.

그저 자신의 글솜씨를 뽐내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글쓰기 교양이기 때문에, 다들 글이라면 '좀 치는' 사람들이었다. 

토론 과제와 별개로 중간/기말을 대체하는 원고를 제출해야 했다.

우수 원고와 부족한 점이 있는 원고들을 수업 때 피드백해주셨는데, 우수 원고라고 해서 꼭 잘 쓴 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이었다. 진부하지 않은, 신선한 관점을 무척 좋아하셨던 것 같다.

 

토론 수업에서는 서로의 해석과 이야기를 공유했다. 동시에, 글에 대한 피드백이 이뤄지기도 했다.

수업을 통해 여러 가지 글을 썼다. 논고와 에세이, 가끔은 픽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글이 현학적이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글이 시니컬하고, 냉소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글이 딱딱하다. 드라이하다. 무미건조하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타 등등.

 

글에 대한 반응이다. 그렇게 느꼈다면 그러한 것이다. 많은 고민을 했다.

앞에서 말했듯, 기록하는 글을 좋아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온전히 글 아래 두어야 한다고 여겼다.

글은 생각이 가는 방향대로 흘렀기에, 혼잡했다. 만연체가 만연했다.

 

교수님과의 면담에서 이런 고민들을 물었다.

 

글에 대해 이러한 평가가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쓰고 싶은 것을 써라.

- 어렵다고는 해도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면, 그것도 학생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특색이 아니겠는가.

- 사실 요즘 학생들은, 쉬운 글을 선호하는 감이 있긴 하다.

 

사람의 감정에 더 와닿는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 감동은 감성에서 오지 않는다.

- 건조한 문체가 내면을 더 강하게 울릴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 책 많지 않으냐. 김훈의 남한산성, 칼의노래...

- 김훈의 산문집을 꼭 보는 것을 추천한다. (사실 아직까지 안 봤다 ㅎ)

 

등등. 이외에도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생각을 많이 해봤다.

예전에 일본 문학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것들을 즐겼던 적이 있는데,

'여기서 우셔야 됩니다' 수준으로 작위적인 상황을 만드는 것을 보고 감동이 짜게 식었던 적이 있다.

그때부터였는지, 감정적 과잉을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던 것 같다.

 

혹은 다른 가설도 있다. 우연히 중고등학교 때 쓴 글과 n수 시절 쓴 글을 보게 된 적이 있는데,

고등학교 시절의 글은 지금의 내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서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기쁘다, 슬프다가 상당히 확고했던 편...

그런데 기이하게도 n수때부터는 감정적 표현을 자제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엿보였다.

추측하건대, 오랜 수험생활로 감정을 삭제당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아님 말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그때의 수업과 피드백과 고민들은 내 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글은 소통의 수단이라는 말이 가장 와닿았다. 나는 그동안 글을 나 자신과의 소통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복잡한 글이더라도, 내가 보는 것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타인은 그렇지 못했다.

글로 소통하지 못한다면 글을 쓰는 목적이 있을까?

나는 내 글을 하루 먼저 공유하고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조원들을 위해 한번 더 설명해야만 했다.

 

'단순함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 만연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인식한 바 있다. 그런데도 글을 여전히 복잡하게 쓰고 있었다.

내 생각과 논리를 단순하게 풀어내는 것 역시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계기로 문체를 바꾸려고 많이 노력했다. 조원들도 예전보다 많이 읽기 편해졌다는 평을 해줬다.

 

내 글을 읽고 피드백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기존 해석에 배치되는, 교수님의 새로운 시각도 신선했다.

문학이나 사회 전반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거리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글에 대해서 떠들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다. 다음에는 수사학 강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회고록의 끝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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